옛 작은 홍콩 시쥐(西莒)의 주요 출입문
칭판항(青帆港)은 시쥐다오(西莒島)의 남안에 있는 시쥐(西莒)의 주요 출입문이자 쥐광향(莒光鄉)의 행정 중심이다. 원래 이름은 <칭판(青藩)>인데 과거 외국인이 거주하여 지어졌다고 한다. 산언덕을 따라 세워진 칭판촌(青帆村)은 드넓은 해면이 보여 전망이 좋다. 흰색 산성과 광활한 하늘이 더해져 지중해 운치를 뽐낸다.
칭판촌(青帆村)은 토지 면적이 약 134헥타르로 상권, 취락, 항구이자 시쥐다오(西莒島)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이다. 청나라 말기 번화하던 시기에는 마주(馬祖)에서 유일하게 <진(鎮)>이 세워진 곳이었다. 화양륜선이 민강에 들어오기 전 반드시 칭판항구에서 밀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무역이 성행하고 번화하여 <작은 홍콩>이라고 불렸다. 전성기에는 칭동리(青東里), 칭시리(青西里)를 관할했다. 지금까지도 쥐광(莒光)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이다. 노점상, 시장, 음식, 기관 단위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.
마을 민가 사이를 걸으면 돌벽, 계단 위 표어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. 마을의 옛집들은 새로 지은 건축 사이에 엎드려 있어 과거 번성했던 시기의 기억이 퇴색됐다. 옛 가옥 문미에 있는 국가 휘장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. 칭판징 텐호우궁(青帆境天后宮)은 옛 거리 위에 있다. 항구 옆 위무진원수묘는 마을과 섬 전체의 신앙 중심이자 참배가 왕성한 곳이다.
미국CIA <서방공사> 깃발을 산해 일가에 휘날리며
1920년 말, 친일 <평화구국군 제2노군>이 이곳을 점거했다. 1930년 말, 동해부대가 전입하여 사령부가 <산해일가>를 건설했다. 1940년 초기 한국 6.25전쟁 때 미국CIA가 <서방공사>라는 이름으로 칭판산(青帆山)에 들어와 정보를 수집하여, 한때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칭판촌(青帆村)의 산해일가에 휘날렸다. 이 때문에 칭판항(青帆港)은 매우 풍부한 인문 역사가 있으며, 현지의 이야기를 해준다.
위무진원수묘(威武陳元帥廟) 칭판촌(青帆村)의 신앙 중심
시쥐(西莒) 위무진원수묘(威武陳元帥廟)는 현지의 독특한 신앙이다. 진원수의 본명은 천탕밍(陳湯銘)으로 사람들의 불평을 잘 해결해 줘 천 형님이라고 불렸다. 정의를 위해 희생한 그의 육신이 칭판항(青帆港)으로 표류해 사흘 밤낮을 떠나지 않자, 주민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출항 만재하여 돌아온다면 잘 안장해 주겠다고 기도했다. 뜻밖에도 기도는 효험이 있었고, 다시 한번 조기를 가득 포획해 돌아온다면 사원을 세워 모시겠다고 약속하자 다음 날 역시 효험이 있었다. 그리하여 지금의 사원이 세워진 것이다.